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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비극의 여인 : 웁팔라반나
작성자 론구론구 작성일 12-12-01 조회수 1,461

연화색

인도의 서쪽 아반티라는 나라 웃제니라는 도시에 푸른 연꽃처럼 연약하고 매혹적인 연화색(蓮花色, 웁팔라반나)이라는 미인이 있었다. 혼인할 나이가 되어 부모는 연화색을 결혼시키고 사위를 맞아들였다. 얼마 후 그 젊은 부부 사이에는 딸이 생겼는데, 그때 바로 연화색의 아버지가 별안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남편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사위와 몰래 정을 통하고 말았다. 그 어머니와 남편의 이와 같은 불륜을 알고 분노와 슬픔을 금치 못한 그녀는 갓난아기를 방에 그대로 둔 채 집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먼 길을 걸어 베나레스 성에 도달하였다. 그때 이 성에는 상처(喪妻)를 한 한 장자가 있었다. 때마침 그는 성문 밖에 홀로 서 있는 연화색를 보았다. 장자는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쏠려 마차를 세우고 청혼하였다. 그녀가 그 뜻을 수락하자, 장자는 여인을 마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로 삼았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장자는 큰 돈을 모았다. 그는 장사를 위해 웃제니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거기서 장자는 우연히 처녀들이 화려하게 차려입고 명절을 맞아 뛰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 중에는 연화색이 낳은 딸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를 닮은 그 미모에 장자는 크게 마음이 동해 그 처녀의 아버지를 만나 수만금을 주고 그 딸을 데려와 아내로 맞았다.

어느 날, 연화색은 둘째 부인의 머리를 빗어주다가, 그녀가 바로 자기 딸임을 알고 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한 때는 어머니와 남편을 같이 했는데, 지금은 또 딸과 남편을 같이하게 되다니, 이 무슨 죄악일까?” 그녀는 다시 집을 나가 거리를 방황하였다.

베나레스 성문을 나서서 울며 울며 가다가 도달한 곳이 라자가하(王舍城)였다. 거기에 온지 며칠 안 되는 동안, 그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성 안의 노름꾼들 사이에 자자하였다. 오백 명의 노름꾼들이 오백 금을 그녀에게 주고 같이 꽃밭으로 가서 거기서 놀았다.

그때 마침 목련존자가 그 동산 안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노름꾼 중의 한 사람이 “너, 저 존자에게 가서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느냐?”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 옛날에 수많은 남자의 마음을 녹였다. 어째서 저런 사람쯤 녹이지 못하겠느냐?”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가진 교태를 다 부렸으나 목련존자의 마음은 숲과 같이 조금도 동요함이 없었다.

그 때 목련존자가 여인을 보고 말했다.

“여인이여, 깊이 스스로 반성하라. 네 몸은 미워해야 할 것으로 가득하다. 내가 만일 네 몸의 부정(不淨)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면 마치 여름철의 변소와 같이 사람들은 너를 버리고 멀리 가버릴 것이다.”

연화색은 자신의 부정을 깨닫고 이렇게 대답했다.

“원하옵건대, 저는 가르침에 따라 출가하고 마음을 바로잡아 도(道)를 닦겠나이다.”

목련존자는 이를 불쌍히 여겨 부처님께 데리고 가 출가하도록 했다. 출가 후 그녀는 등에 불을 켠 다음, 마음을 불꽃에 고정시키고 불-까시나(kasina: 대상에 대한 집중)로 마음공부를 하였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 결국 아라한과를 얻었다.

연화색 비구니가 과거를 꿰뚫어보는 숙명통의 지혜를 얻어 과거를 관찰해보니, 항상 지옥에 드나들어 빠져나올 기약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왕사성의 여인들에게 “다만 출가만 하면 설사 파계해서 지옥에 들어갈지라도 마침내는 해탈할 때가 있다”고 출가를 권했다. <연화색비구니경> <법구경> <사분율> 등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연화색 비구니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것은 탐진치 삼독의 불을 끄고 보시행을 강조하는 법문이었다.

“지혜를 어지럽히는 것은 야심과 욕심이니 마음에 탐욕의 불길을 꺼야 하느니라. 소유욕을 비워야 하느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삼보를 공경하며 노력과 재물과 지혜와 정성을 다하여 보시하라. 그대들 마음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대 앞에는 평화와 우애와 행복의 큰 길이 열리리라.”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苦集滅道) 4성제 법문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을 말끔히 씻어주고 억겁의 무명을 일순간에 광명으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 용시 아가씨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용성(龍盛)부처님이 되리라는 수기(受記)를 받은 용시(龍施)아가씨 또는 용시보살은 <용시보살본기경(龍施菩薩本起經)>과 <용시녀경(龍施女經)>에 등장한다.

부처님이 비야리성의 암라나무 절에 계실 때, 탁발을 하다가 수복(須福) 장자의 집 앞에 이르렀다. 마침 열네 살의 용시 아가씨가 목욕을 하고 나오다가 부처님을 뵙고 기뻐하며, 보살행을 닦겠다고 결심한다.

이 때 악마는 용시가 큰 뜻을 내는 것을 보고, 그녀가 장차 부처가 되어서 자신의 백성을 제도할 것을 걱정한다. 악마는 용시의 아버지로 변장한 후, 불도는 얻기 어렵고 여자는 전륜성왕이 될 수 없음을 말하며 용시를 아라한의 길로 이끌고자 한다. 그러나 용시는 보살도를 받들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악마는 용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고 더욱 애가 타서 마침내 악담까지 한다.

“만약 보살의 행을 하려면 세상도 탐내지 아니하고 생명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네가 정진하여 능히 누각 위에서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고 하면, 후에 부처가 될 수도 있으리라.”

용시는 이내 난간 가에 서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말하였다.

“이제 하늘 안의 하늘(天中天)께 귀의하옵니다. 일체지(一切智)로써 제가 구하는 바를 알아주옵소서. 생명 버리기를 청할지언정 보살의 뜻은 버리지 않겠나이다. 몸으로써 부처님께 보시하오니, 원컨대 꽃을 흩뿌리듯 하여지이다.”

용시가 바로 몸을 날려 누각 아래로 던졌는데, 아직 땅에 닿기도 전에 남자로 변화되었다. 부처님께서 웃으시니, 5색의 광명이 입안으로부터 나와 한 부처님 세계를 비추었다. 그 빛은 도로 돌아가 부처님 몸을 세 바퀴 돌고 정수리 위로 들어갔다. 부처님께서 설하셨다.

“이 여인이야말로 전 세상 동안에 이미 만 분의 부처님을 섬겼고, 이후에는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미래의 부처님을 공양할 것이니라. 7억6000만 겁에 이르러서 부처가 될 것이니, 명호는 용성(龍盛)부처님이라 할 것이며, 그 수명은 1겁 동안이니라. 열반하신 후에는 경전과 도가 흥성하다가 반 겁이 지나면 스러질 것이니라.”

이 때 용시의 몸은 부처님 앞에 서 있었는데, 용시가 그의 부모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저를 놓아주시어 사문이 되게 하소서.”

부모가 이내 허락하자, 안팎의 권속들이 모두 위없는 도(道)를 닦겠다는 뜻을 내었다.

<용시녀경>에서 용시는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는 아라한을 넘어서, 일체중생을 제도해 함께 열반에 이르겠다는 보살도를 서원하고 실천하는 전형적인 대승의 구도자로 묘사되고 있다. 용시는 전세에 닦은 인연공덕으로 부처님을 친견하자마자, “보리심을 발하고 보살행을 닦아 부처님처럼 보리도를 이루리라” 서원하고 목숨을 버릴지언정 보살도는 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 정도의 원력이 있다면 세상에 못 이룰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부처님께서 전생에 설산동자로 도를 닦을 때, “모든 것은 무상하며 이것은 생멸의 이치다(諸行無常 是生滅法)”라는 게송의 뒷 구절을 듣기 위해, 절벽에 몸을 던진 후 “생과 멸이 다 소멸하고 나면 적멸한 것이 즐거움이니라(生滅滅己 寂滅爲樂)”라는 게송을 나찰귀신으로부터 듣게 된 것과 흡사하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간절함이 있다면, 깨치지 못할 화두가 없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확철대오 하려면 세 번은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我)라고 하는 생각, 내가 소유한 모든 것, 자존심과 명예 등등, 무아(無我)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비우고 또 비우며 아상(我相)을 죽이고 또 죽이는 처절한 자기 부정과 이를 통한 대 긍정의 정반합(正反合)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이 백 척의 높은 장대 위에서 한발 내딛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각오로 철저히 ‘거짓 자기’를 죽이는 실험에 뛰어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출처 :  http://blog.daum.net/01193704043/1241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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